자매에게,

월말도 아닌데 갑자기 온 편지에 혹시 놀랐어? 지난 편지에 살짝 언급했던대로 네가 생각날 때마다 예상치 못한 소나기처럼 가끔 찾아오려고 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한때는 이렇게 말했다지. 하지만 페미니스트로서, 여자로서 명절은 온전히 행복하다기보다는 복잡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잖아. 

그래서 여기 이번 추석에 읽을 다섯 권의 책을 준비했어.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게 정 괴롭다면 다른 세계로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야. 나는 그럴 때 여성 작가가 쓴 SF 소설을 읽어.

옥타비아 버틀러, 코니 윌리스, N.K 제미신, 팁트리 주니어... 목록을 만든다면 끝도 없겠지만, 최대한 지금 여기와 멀리 떨어진 이야기를 기준으로 골랐어. 

바로 <사소한 정의>, <사소한 칼>, <사소한 자비> 3부작이야. 지구와 얼마나 떨어졌을지 모를 은하에서,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주인공인 소설이니까. 처음엔 낯설겠지만 익숙해질수록 허겁지겁 읽어나가게 될 거야. 

이 책의 큰 재미는 모든 인물을 '그녀'라는 대명사로 칭하는 데서 와. 주인공이 쓰는 언어는 영어와 달리 성별에 따라 대명사가 분리되지 않고, 유일한 인칭 대명사는 '그녀'뿐이야. 은하를 호령하는 지도자, 셀 수 없이 많은 몸을 가진 인공지능, 부패한 관료까지 등장하는 모두를 여자로 생각하며 읽어도 좋다는 얘기지.  

흠흠, 쑥스럽지만 이 목록에 <탈혼기>를 넣지 않을 수 없겠지? 꼭 내가 써서가 아니라 정말 좋은 책이라구. 

책을 내고 나서 여러 여자들에게 개인적인 메시지를 받았어. 결혼 제도에 묶여 있거나 탈출하고 있는 분들도 계셨지만, 어떤 분들은 다른 방식으로 가부장제에 고통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지. 

가부장제가 이토록 탈출이 힘든 건 친밀한 얼굴들 때문인지도 몰라. 우리는 제도의 얼굴은 모르고, 우리와 같은 상에서 먹고 마시는 남자들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건 알지. 그리고 그들을 벗어난 삶은 상상하기 쉽지 않아.

내 '흑역사'가 가득 담긴 이 책이 네게 탈출을 향한 나침반이 되길 바랄게. (혹시 아직 책이 없다면 내일인 9월 7일부터 리디북스에서 <추석맞이 여성도서전>으로 3000원 대여 이벤트를 하니까 이번 기회를 노려봐!) 

모든 여자들이

풍요롭고 자유로운 명절을 누리기를 바라며,

혜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