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에게,

나는 그때 신당역에 있지 않았어. 죽임당할 수 있는 수많은 장소를 우리는 그저 운 하나로 비껴가지. 나는 그때 강남역에 없었고, 나는 그때 마포구 오피스텔에 없었고, 나는 그때 노원구 아파트에 없었듯이, 여타 500개의 장소를 피했듯이, 나는 그때 신당역에 없었어.

내가 어디 있었냐 하면, 집에 있었어. 나 혼자 사는 집에서 속 편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어. 도어락이 굳건히 닫혀 있는 것을, 창문마다 걸쇠가 걸린 것을 분명히 확인한 채 잠이 들었지.

현실처럼 생생한 꿈속에서 현관문은 잠겨있지 않았어. 문을 닫으려고 할 때마다 골목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웬 남자들이 달려 나와 발을 밀어 넣었어. 그렇게 별수 없이 열어둔 문을 통해 (내 악몽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전남편이 유유히 들어왔지. 112에 신고하려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두드렸지만 받지 않았어. 나는 곧 내 몸 위로 올라탄 전남편에게 제압당하고, 그리고…

꿈에서 겨우 깼을 때 침구는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눈동자는 아직도 사방으로 빠르게 움직였어. 나는 현실로 얼른 돌아오고 싶어서 바로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켜고, 그러자마자 신당역에서 네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읽어.

처음에 넌 좀 낯설게, 멀게 느껴져. 꿈을 꾸고 난 후인데도 그래. 기사는 널 신당역을 순찰하던 ‘역무원’이라고 소개하고, 웃기지, 그 순간 덜컥 나는 내가 ‘역무원’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만은 안전하다고 믿고 싶은 방어기제는 불가항력인가 봐.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것도 아주 잠깐뿐, 사건이 보도될수록 나는 너라는 용감한 친구를 꼭 원래 알았던 것 같아. 

"언니, 나 같은 직장 남직원이 화장실에 불법촬영용 카메라를 설치하는 걸 봤어."

우리가 친구라서 네가 그렇게 고백해왔다면 나는 뭐라고 충고했을까? 당연히 신고하라고 했겠지! 그 동기가 그렇게 찍은 영상 중에 너도 있다며 협박을 해온다면 당연히 나는 고소하라고 했을 거고, 또 온갖 공권력과 제도와 기관을 알아다 주면서 문을 두드려보라고 했을 거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외에 다른 충고를 하진 못했을 거야.

내가 충고했을 일들을 네가 전부 다 했다는 게 너무도 고통스러워. 너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정의를 찾았는데, 정의는 널 그렇게 내버려 뒀다는 게 믿기지 않아.

“누구보다도 이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가, 합의 없이 오늘까지 버틴 것은 판사님께서 엄중한 처벌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 <‘신당역 살인’ 유족 대리인 “고인 명예 훼손되지 않길”>, 한겨레

네게 하루만 더 있었다면 판사는 네 탄원서를 법정에서 읽을 수 있었을 것이고, 가해자 전주환은 (사법부의 행태를 볼 때) 설사 엄중하지는 않더라도 처벌을 받긴 받았을 것이고, 너는 아마 사건에서 벗어나 회복의 단계를 밟아갔을 텐데. 그 똑같은 이유로 전주환은 범행 날짜를 그날로 정했지. 네 회복을 불가능하게 한 그 최종적인 가해를 나는 용서할 수가 없어, 도저히.

이번 달엔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트라우마>를 읽으면서 네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 평생 여자의 정신 건강에 헌신한 정신의학자 허먼이 1997년에 낸 이 책은 이제는 일상어가 되어버린 PTSD,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다루는 고전이거든.

책에서 허먼이 주로 다루는 피해는 두 종류야. 하나는 PTSD라는 개념을 처음 세상에 알린 참전 후유증이고, 다른 하나는 강간을 비롯한 남자의 폭력으로 여자가 겪는 외상이지.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할 때의 ‘히스테리아hysteria’가 그리스어로 여자의 포궁을 뜻한다는 걸 알고 있어? 19세기 후반의 남자 의학인들은 여자에게 나타나는 정신적 이상들을 보면서 모든 문제는 다 우리가 여자라는 데 있다고 믿었대. 환자들이 지독한 친족 성폭력 피해를 고백하는 순간에도 말이야.

그 믿음은 곧 보기 좋게 박살 나고 말았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온 남자 군인들이 정확히 똑같은 증상들을 겪기 시작했거든. 이유 없이 울고 소리를 질러댔고, 감각이 뻣뻣하게 굳거나 기억을 잃기도 했지. 전장에서 극한의 공포에 시달리며 타인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이 흔적을 남겼던 거야.

몇 차례의 전쟁이 더 지나갔고, 반전운동가들과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으로 결국 두 증상은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게 되었어. 큰 충격을 주는 트라우마(외상)를 겪은 이후에도 계속되는 증상이라는 뜻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그 이름인 거고.

너도 이런 이야기를 알았을지 몰라. 그런데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 대다수가 여자인 “강간, 가정 폭력, 근친 강간 생존자들”(p.67)이 전쟁 생존자들과 같은 증상을 겪는다면, 그건 무슨 뜻일까? 허먼은 말을 돌리지 않고 이렇게 냉철하게 설명해.

이러한 통찰이 담고 있는 함의는 100년 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무시무시하다. 남성의 숨겨진 폭력에 의하여 여성의 종속은 유지되며 작동되고 있다. 성별 간에 전쟁이 있다.

- <트라우마>, p.67

우리는 조용해서 더 끈질긴 전쟁 한복판에 있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얼마를 거슬러 올라가도 여자는 전쟁이 없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해. 총성은 울리지 않고, 우리는 어젯밤 또 어떤 여자가 남자 손에 다치거나 죽었다는 소식을 그저 알음알음 듣게 돼.

우리는 장소를 기억해서 같은 운명을 피하려 해. 어두운 골목길, 호프집의 후미진 여남 공용 화장실, 남자들만 우글우글한 게임 길드, 그러나 목록은 계속 길어져. 여자들은 가장 안전할 거라 믿었던 장소들, 그러니까 대중교통과 일터와 집에서, 가장 안전해 보였던 남자들, 그러니까 직장 동료와 연인과 가족 손에 죽잖아.

그러다 어느 순간이 오면 한 가지 사실만이 분명해지지. 나는 너일 수 있었어. 그 순간 그 장소에 너 대신 내가 있을 수도 있었어. 그런데 대체 어떻게 우리가 네 죽음을 그냥 넘길 수 있겠어?

신당역에 가지 않을 수는 없었어.

내가 신당역으로 향하던 날은 선선한 가을바람이 섞여 딱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였어. 그러나 마음은 공기 한 자락 통하지 않게 무거웠어. 나는 발로는 건성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머릿속으로 포스트잇에 뭐라고 써야 할지를 고민했어.

내가 네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다시는 신당역에 돌아오지 않을 네게, 스토킹처벌법에 어떤 엄청난 변화가 생긴대도 그 수혜를 볼 수 없을 네게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서 의지할 만한 안전으로, 해리된 외상에서 승인된 기억으로, 그리고 낙인찍힌 고립에서 사회적 연결의 회복으로.

- <트라우마>, p. 307

내가 권한 책의 한국어판은 <트라우마>라는 제목으로 나왔지만, 원제는 <트라우마와 회복trauma and recovery>이라고 해. 환자들과 함께 “치료 동맹”(p. 291)을 맺어 트라우마에 맞서 온 허먼은 트라우마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회복이 가능하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아.

나는 그래서 이 책이 고통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처럼 느껴졌던 거야. 기사 몇 줄로도 네가 2년 동안 겪은 일의 무게가 절절하게 다가왔고, 내가 꾸는 꿈들보다도 더 심한 악몽이 널 찾아올까 봐 걱정됐고, 그래도 내가 회복으로 나아가듯이, 책 속의 환자들이 회복되듯이 너도 꼭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이 책이 널 위한 책이 될 수 없다는 건 내가 밑줄 그은 문장마다 찍힌 간단한 단어 하나에도 드러났어.

생존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상해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지만, 회복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분명하게 불공평한 이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 곧 역량 강화의 첫걸음이 된다.

- <트라우마>, p.379

생존하지 못한 네게는 어떠한 책임도 없지. 회복해야 할 책임마저도, 이 세상을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꿔나가야 할 책임마저도. 그러니 어느 좋은 책도 너에겐 소용이 될 수 없는 거야.

발을 구르면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 위에서 내가 진정 뒤로 밀어내고 싶었던 건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무력감이었어. 책에 따르면 외상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감정을 느낀다지.

“2016년 이후로

나도 바뀌고

내 자매도 바뀌었는데

세상만 그대로.

편안히 가세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는 추모공간이 차려진 신당역 10번 출구에 도착해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어. 특히 어떤 자매가 붙여놓은 이 쪽지는 꼭 내 마음 같아서 그 앞에 한참 서 있었어.

알아, 세상이 아주 그대로는 아니지. 계단을 내려가 역사로 들어가면 서울중부경찰서는 불법촬영은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하는 거대한 배너를 걸어놓았고, 서울교통공사는 여자화장실 앞에 코팅된 A4용지를 붙여 불법촬영 피해신고 창구를 안내하고 있었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없던 것들이야.

그러나 네가 전주환의 가해를 견디다 못해 두 번째로 고소했을 때 경찰은 구속영장조차 신고하지 않았고, 네 직장이기도 했던 서울교통공사는 전주환이 내부망에 접속해 네 정보를 캐내도록 방조해서 살인을 도왔어. 다년간의 여성운동으로 2021년 도입된 스토킹처벌법도 널 보호하지 못했어.

10번 출구에 붙은 수백 개의 포스트잇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거나 다름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어. 어떤 분노는 당장 폭발할 것처럼 이글거렸고, 어떤 분노는 드라이아이스처럼 냉철했지. 가해자와 책임자를 명확하게 지목하면서, 같은 비극을 막을 방법을 제시하면서, 자매들은 정당한 분노를 터트렸어.

“다시 분노하는 법을 되찾고 갑니다.”

나는 몇 번을 고민하다가 준비해 간 편지지에 이런 말을 웅얼거렸어. 실은 더 복잡한 감정이었어. 뉴스를 접한 이후로 그저 슬픔에 빠져 있던 내가 나약했던 것 같아 부끄러워졌고, 분노를 수혈받은 것처럼 내 안에서 잊고 있던 에너지가 차오른 건 맞았어.

그렇지만 여전히 날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슬픔이었어. 합의해달라는 전주환에게 시달렸던 네 죽음으로 인해 스토킹의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해.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네가 죽고 열흘 뒤에 “고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약속했어. 그러나 어떤 노력도 너를 살려낼 수는 없겠지. 그것이 죽음이니까.

책이 필요한 건 나라는 생각을 했어.

“만약에 말이야……?”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니까, 바보 같은 소리라는 거 나도 아는데, 하지만 혹시라도 죽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면?”

- <먼 길로 돌아갈까?>, p.215

2월호 별편지에서 캐럴라인 냅이 쓴 <욕구들>을 소개하다가, 캐럴라인이 마흔둘의 나이로 폐암 진단을 받고서 단 7주 만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욕구들>의 서문까지 쓸 만큼 절친한 친구였던 게일 콜드웰이 둘의 우정과 헤어짐을 기억하면서 <먼 길로 돌아갈까?>를 썼다는 사실도.

그렇게까지 눈물이 펑펑 날 줄은 모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른 책이었어. 반려견을 함께 산책시키며 실컷 수다를 떤 후에도 헤어지기 싫어서 먼 길로 돌아가자고 하는, 여자들 사이의 깊은 우정에 더 초점을 맞춘 책일 줄 알았지. 하지만 그런 관계를 영원히 잃는 게 어떤 의미일 줄은 짐작도 못 했던 거야.

캐럴라인이 죽고 나서 게일은 이 말도 안 되는 죽음을 대체 어떻게 삼켜야 할지 갈팡질팡해. 그러다 친구의 음성사서함에 횡설수설 메시지를 남기기도 하지. 죽음에서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애도는 괴로운 일이니까.

혹시라도 죽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면? 캐럴라인의 죽음은 나에게 아주 크고 지독한 선물을 남겼다. 상실이 먼지나 달빛처럼 흔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어떤 상실은 견디기 힘들지라도.

- <먼 길로 돌아갈까?>, p.237

너를 생각하며 책을 다시 읽었어. 그리고 먼지나 달빛처럼 흔하게, 내가 알게 될 짬도 없이 남자 손에 죽어버린 모든 자매들 역시 생각했어. 나보다 먼저 깊이 슬퍼 본 게일은 진정으로 애도하는 법을 알려주었지.

“애도는 본질적으로 자기 중심적”(p.238)이라고 게일은 말해. 누군가를 잃고 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슬픔은 가르쳐준다”(p.16)라고도 말해. 이 모든 것을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견디는 수밖에 없다”(p.265)라고도.

그래서 나는 이제 슬픔을 견디는 내가 나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는 반면, 너의 죽음은 나를 일깨워줄 수 있다는 사실을 힘겹지만 받아들이게 됐어.

“나도 아미니처럼 죽을 수 있었어요.”

- <두려워하라, 두려워하라, 우리는 모두 함께다!>, 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이번 달 이란 전역에서는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시위가 번져나갔어. 아미니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꼬투리를 잡혀 종교 경찰에 잡혀갔다가 스물두 살의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 분노한 여자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히잡을 불태우고 머리를 잘랐고, 이는 어느새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반정부 시위가 되었지.

SNS에 올라온 한 장의 시위 사진을 나는 지금도 옆에 틀어놓고 있어.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내 하나의 검은 깃발로 나부끼는 여자들의 분노는, 어쩌면 죽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증명일까? 아니, 그보다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세상에는 진정으로 애도한 후에만 도달할 수 있는 분노도 있다고, 그런 분노는 이 불합리한 세상을 정확히 겨냥해 쩍 갈라지게 만들기도 한다고.

네가 절대 읽을 수 없을 편지를 끝마치며, 나는 가능한 한 오래 널 기억하리라고 다짐해. 이 분노로 세상을 바꾸는 건 살아 있는 자들의 책임이니까.

널 애도하며,

2022년 9월 30일

유혜담

추신 1.

다음달 28일 금요일에서 30일 일요일까지 열리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14 - 서울아트북페어 2022>에 별세계가 부스로 참가하게 되었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탈혼기>를 소개할 생각을 하니까 벌써 떨리고 기대 돼. 

<탈혼기>를 이미 가지고 있더라도 그때쯤 서울시립미술관 근처를 지날 일이 있다면 꼭 들러줘. 별편지에 덧붙였던 레시피들도 엽서로 만들어 가지고 나갈 거고, 책을 가져온다면 별 건 아니지만 내가 사인도 해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 자리를 지키는 동안 큰 용기가 될 것 같아...) 

추신 2.

이번 달 레시피에 ‘살아 볼 가치 파스타’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데는 사연이 있어. 이 레시피는 이탈리아에서 보통 ‘푸타네스카puttanesca’라고 불리는 스파게티를 변형한 건데,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친구가 이 파스타를 해 먹고는 “살아 볼 가치가 있는 맛이었다”라고 한 게 너무 기억에 남았거든.

‘푸타네스카’를 검색하면 ‘매춘부의 파스타’라는 설명이 나와. 매운맛 때문이라는 둥, ‘손님’을 받는 중간중간 만들어 먹은 음식이라는 둥 어원도 설이 다양하지. 여자에게 큰 외상을 입히는 성착취를 가볍게 여기는 명칭이 나는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았어.

하지만 우리는 외상을 입고도 살아있는 한 회복을 향해 나아가잖아. 난 요리를 해서 날 먹일 때 항상 조금은 낫는 기분인데, 먼 곳 이탈리아의 성착취 피해자들도 그럴 수 있었을 거라고 상상해 봐. 

정통 레시피에는 앤초비와 올리브, 케이퍼가 들어가. 이탈리아에선 흔한 재료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냉장고에 이 셋이 전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 같아서 한국에서 흔한 재료로만 만들어봤어. (물론 있다면 넣어도 좋아!)

먼저 집에 있는 것 중 제일 물이 많이 들어가는 냄비에 물을 끓이기 시작해. 바닷물만큼 짜다 싶을 정도로 소금을 충분히 쳐야 면에 간이 배어서 맛있어.

토마토와 대파를 썰고 마늘을 다지다 보면 물이 펄펄 끓을 거고, 파스타 면을 넣으면서 타이머를 맞춰. 파스타는 타이밍이 생명이거든. 그러니까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몰입하면서 다른 화구에 프라이팬을 바로 올려야 해.

대파와 마늘을 올리브유에 볶다가 향이 나면 썰어놓은 토마토와 고춧가루, 그리고 참치 한 캔을 통째로 넣고 하나의 소스로 어우러지도록 볶아줘. 파스타가 다 삶아졌다는 타이머가 울리면 면을 소스에 바로 넣어 빠르게 섞어서 완성이야.

이 더럽고 혼탁한 세상조차 살아 볼 가치가 있어, 그렇지?